지식을 설명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역할이 있을까?
Problem-Solving Instructor
나는 강의를 할 때 스스로에게 먼저 선을 긋는다.
최신 툴을 빠르게 정리해주는 역할, 기능을 대신 실습해주는 역할, 트렌드를 요약해주는 역할은 내가 맡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런 정보는 이미 충분히 많다. 검색하면 나온다. 영상 플랫폼에도 넘쳐난다.
그렇다면 강의 현장에서 굳이 사람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 설명을 위해서라면 녹화 영상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강사를 설명자가 아니라 설계자라고 본다.
설명은 전달로 끝난다. 설계는 변화까지 책임진다.
설명은 내용을 중심에 둔다. 설계는 학습자의 행동을 중심에 둔다.
왜 그렇게 보느냐고 묻는다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본 장면 때문이다.
강의를 들은 뒤 “좋은 내용이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3주 뒤 실제 업무가 달라진 경우는 드물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
가상의 사례를 하나 보자.
직원 12명 규모의 지역 유통업체가 있다. 대표는 AI 활용 교육을 요청했다. 재고 관리와 매출 예측을 개선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하루 8시간 교육을 진행했고, 엑셀과 파이썬을 연동하는 자동화 예제도 실습했다. 참가자들은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달 뒤 다시 방문했을 때, 실제 업무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자동화 파일은 공유 폴더에 있었지만, 기존 수기 보고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교육 내용이 어려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직원들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른 지점이 보인다.
그 회사는 “누가 언제 데이터를 입력하고, 누가 그 결과를 보고, 어떤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는지”가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즉, 도구는 배웠지만 구조는 설계되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를 다시 정의해볼 필요가 있다.
강의의 목적은 지식 전달일까, 아니면 업무 구조의 전환일까?
목적이 후자라면,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많은 강의가 이런 착각 위에 서 있다.
“이해하면 실행할 것이다.”
“도구를 알면 자동으로 활용할 것이다.”
“좋은 예제를 보여주면 현장에 적용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조직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행동은 이해가 아니라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사람은 원래 하던 방식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강의를 설계할 때 세 가지를 먼저 정한다.
첫째, 강의 이후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행동 한 가지.
예를 들어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에 자동 생성된 재고 보고서를 기준으로 발주 회의를 한다”처럼 구체적으로 정한다.
둘째, 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 분담.
데이터 입력 담당, 검증 담당, 최종 판단 담당을 명확히 나눈다.
셋째, 실패 가능성을 줄이는 최소 단위 도구.
처음부터 복잡한 대시보드를 만들지 않는다. 한 장의 시트, 한 개의 지표로 시작한다.
이 세 가지가 정리되지 않으면, 강의는 설명으로 끝난다.
설계자의 관점에서 보면 강의는 콘텐츠가 아니라 시스템의 일부다.
참석자가 듣고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조직 흐름에 삽입되는 장치다.
그렇다면 강사가 설계자가 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첫째, 커리큘럼의 출발점이 기술이 아니라 문제여야 한다.
“파이썬을 배운다”가 아니라 “반복되는 수기 집계를 줄인다”가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둘째, 강의 시간의 일부는 반드시 구조를 그리는 데 써야 한다.
현재 업무 흐름을 화이트보드에 그리고, 병목 구간을 표시한다.
기술은 그다음에 붙인다.
셋째, 수료 기준을 이해도가 아니라 실행으로 둔다.
강의 마지막 날까지 실제 업무에 적용한 결과물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이 방식은 시간이 더 든다.
설명만 하는 것보다 준비도 복잡하다.
그러나 변화가 남는다.
강사를 설명자로 두면, 평가는 만족도로 끝난다.
강사를 설계자로 두면, 평가는 변화로 이어진다.
나는 강의 요청을 받을 때 이렇게 묻는다.
“이 교육이 끝난 뒤 조직에서 어떤 회의가 달라져야 합니까?”
“보고 방식이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누가 무엇을 하지 않게 되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나는 강의 범위를 줄인다.
내용을 줄이는 대신, 실행 설계를 늘린다.
혹시 이것이 과도한 접근은 아닐까?
강의는 지식 전달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다.
모든 교육이 구조 전환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업 교육, 특히 AI나 자동화처럼 업무에 직접 연결되는 주제라면, 설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 국내 기업 교육 후 실제 업무 적용률에 대한 통계 자료는 별도 조사 필요)
강사는 무대 위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흐름을 재설계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준비 중인 강의가 있다면, 한 번 점검해볼 수 있다.
이 강의는 무엇을 설명하는가?
아니면 무엇을 바꾸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설명은 박수로 끝난다.
설계는 습관으로 남는다.
당신이 맡은 교육이 있다면,
다음 강의안에서 한 가지 행동 변화만이라도
명확히 설계해보는 것은 어떨까.
AI현장감독 이동주는 AI 도입 과정에서 반복되는 구조 문제를 연구한다.
AI adoption failure를 기술 문제가 아닌 설계와 흐름의 문제로 바라본다.
Fieldbly에서 현장 사례를 기반으로 정리하고 있다.
(homepage) http://www.fieldbly.com